[김홍기] 젠더리스(Genderless)의 시대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사진=GQ |
며칠 전,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였던 매슈 아놀드가 쓴 ‘문학과 독단(1873년)’이란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그는 현대 패션 산업이 잘 써먹는 ‘시대정신(zeitgeist)’이란 단어를 만들어낸다.
그는 평론가의 의무는 집단의 정신상태를 관찰함으로써 시대를 해석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이란 대립되는 것들이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세계이기에 변화는 정신적인 것이고 필연적인 것이며, 사회 내부에서 한 가지 특성이 지배적이면, 그 반대의 것을 선호하는 반작용이 반드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19세기 중반에 나온 이 주장은 현대의 패션 트렌드를 읽는데도 적용된다. 최근 패션 산업에서 큰 변화는 남성복 시장의 붐이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소매 업체인 매치스패션에 따르면 남성복 매출이 매년 40퍼센트씩 상승하고 있다. 남성 구두는 50퍼센트로 폭이 더 크다. 유로 모니터는 남성복이 여성복을 누르고 2026년까지 매년 5.8퍼센트의 비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역사적으로 고대에서 17세기 중반까지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옷을 샀고, 자신들을 꾸몄다. 그 이후로는 여성의 의복 구매가 남성을 앞질렀고 현대까지 이어졌다.
남성복 시장의 붐에는 3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 오랜 기간,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많은 남성들이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졌고, 이 과정에서 안락함이 삶의 열쇳말이 되면서 고객들은 스키니 진과 재단된 수트 대신 통이 넓은 팬츠와 느슨한 티셔츠 등 캐주얼웨어로 구매의 방향을 선회했다. 둘째 젠더의 유동성이 커진 것도 남성복 성장에 한몫을 하고 있다. 고정된 남성성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지면서 남성복의 범위도 확장되는 추세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패션 브랜드들의 움직임도 부산하다. 럭셔리 브랜드만 해도 루이비통은 비버리힐즈에 남성용 매장을 출점할 예정이며 이탈리아의 남성복 에르메네질도 제냐도 제품 라인 전체에 스포티한 미감을 더하겠다며 스포츠 코트와 니트웨어 같은 캐주얼 품목에 투자를 확충하고 있다.
세 번째 요인은 놀랍게도 축구다. 지난달, 프랑스의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에두아르도 카마빙고는 발렌시아가의 패션쇼에 출연했다. 디자이너들은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19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전성기 시절 축구문화에서 영감을 끄집어내 디자인에 적용해왔다. 축구와 관련해 영연방 계열 국가에서 ‘보통남성’들을 의미하는 블록(Bloke)란 단어가 뜨고 있다. 작은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관람하는 남자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이들이 입던 자칭 아재들의 옷 스타일을 블록코어라고 부르게 되었, 이 스타일이 ‘남성복의 미래’로 떠오른 것이다.
틱톡에서만 블록코어 해시태그의 개수가 2700만 개가 넘자, 신규 남성 고객층을 개발하기 위해 버버리와 구찌, 디올도 새로운 스포츠 스타 엠배서더를 기용하기로 했다.
블록코어 하위문화의 흐름을 향후에 떠오를 시대정신으로 읽어내고 상품화를 타진하는 브랜드들은 앞으로 더 늘 것이다. 가령 뉴욕 퀸스의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주력으로 삼은 에임 레온 도르(Aimé Leon Dore)는 재빠르게 최신 남성복의 시대정신을 잘 포착했다. 중년 남성들이 즐겨 입는 배기 진, 퀼트 가디건, 폴로셔츠 같은 스타일을 되살려낸 것이다.
블록코어의 중심에는 1990년대 영국 20대 청년들의 축구문화 및 80년대 캐주얼 운동의 문화적 영향력이 존재한다. 80년대는 큼지막한 로고로 대표되는 브랜드 전성시대였다. 글래머의 시대로 불리는 이때, 축구문화는 기성세대의 자본과 권력에 대비되는 청년들의 캐주얼 패션을 유행시킨 힘이었다. 축구팬들의 패션은 리버풀과 맨체스터, 나아가 독일과 스페인, 이탈리아의 각종 펍에 그들의 옷차림을 유행시켰다.
패션에는 항상 대립되는 힘들이 존재한다. 시대의 흔들리는 추에 따라, 균형을 잡아가는 패션의 힘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항상 그 힘을 추억하고 향수에 빠진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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