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애] 패션 업계의 '장인'이라 불리던 이들은 왜 추락했나
월요마당
발행 2026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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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애의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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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생성 이미지 |
1986년의 어느 봄날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첫 출근을 하던 날, 사무실을 가득 메운 거대한 도면과 빽빽한 수기 장부 사이에서 나는 그저 작고 조용한 존재였다. 자욱한 담배 연기, 규칙 없이 귓가를 때리던 타자기 소리, 쉴 새 없이 울려대던 전화기까지. 낯선 공간의 모든 것이 아득하게 다가오던 그때, 내 책상 위로 커다란 기계 한 대가 놓였다. 바로 '386 컴퓨터'였다. 지금 돌아보면 투박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그 작은 모니터는 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열어주었다. 디지털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이었던 셈인데,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책상 위에 놓인 그 기계 한 대가 내가 걸어갈 40년의 궤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2007년, 또 한 번의 거대한 물결이 밀려왔다. 아이폰의 등장이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하나가 사람들의 일상과 비즈니스 문법을 근본부터 뒤흔들었다. 패션 산업 역시 거센 변화의 한가운데에 섰다. 디자이너의 직관적인 감각과 중관 관리자의 경험에 의존하던 전통의 패션 유통은 모바일과 이커머스라는 거대한 바다를 만났고, 데이터와 플랫폼, 물류와 공급망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고도의 지능형 산업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생성형 AI'라는 또 다른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AI는 단 몇 초 만에 수백 가지의 디자인 시안을 제안하고, 가상의 런웨이 이미지를 구현해 내며, 방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시즌의 트렌드를 짚어낸다. 하지만 AI가 쏟아내는 추천 상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기술이 이토록 눈부시게 진화할 때, 우리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패션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40년 가까이 디지털 변화의 최전선에서 호흡하며 체득한 진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아무리 정교한 AI라 하더라도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며, 데이터가 아무리 넘쳐나도 이를 가치 있게 연결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공허한 숫자에 불과하다. 더욱이 패션에는 숫자와 데이터만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존재한다. 한 벌의 옷을 완성하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디자이너의 고뇌, 원단의 결을 느끼고 패턴을 매만지는 섬세한 감각, 오랜 시간 현장에서 묵묵히 축적된 생산의 노하우, 그리고 한 땀 한 땀 옷에 생명을 불어넣는 장인의 손길. 여기에 환경과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산업의 철학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탄생한다. 이것이야말로 어떠한 알고리즘도 쉬이 복제할 수 없는 '패션의 심장'이다.
40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기술은 늘 먼저 달려가고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며 의미를 묻는다는 것이다. 도구가 바뀌어도 그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의 시대에도 패션이 사람의 일로 남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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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미애 세원아토스 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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