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 몰리는 성수, 정체성 지킬 수 있을까
올해 건물 매수인 73%가 법인…젠트리피케이션 우려
팝업·플래그십 경쟁에 5년 전 대비 임대료 50% 상승
성동구 입점 규제 실효성 한계…상권 확장성은 긍정적
[어패럴뉴스 이종석 기자] 과거 소규모 공방과 먹거리 중심이었던 성수동이 유명 브랜드의 팝업·플래그십 매장 격전지로 탈바꿈한 가운데,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자본 유입으로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소규모 상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팬데믹 이후 유통·패션·뷰티·IT 등 대형 기업들의 오피스·상업용 건물 매입과 직영점 출점이 늘면서 상권이 과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성수동의 다양성과 개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올해 성수동의 건물 매수인 가운데 법인 비중은 70%를 넘어섰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9월 성수동1·2가의 건물 매수인 152명 중 법인은 111명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7.2%(61명)와 비교하면 비중이 2배 가까이 높아졌다. 법인 매수인은 2022년부터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상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핵심 거리인 연무장길 일대의 평당 상가 임대료는 5년 전 대비 50% 이상 뛰었다. 단순 프렌차이즈가 아닌, 단기 팝업과 플래그십 매장 경쟁이 임대료 상승을 부추겼다는 점이 다른 상권과의 차이점이다.
상업용 부동산 종합 서비스 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올해 1~9월 성수동에서 열린 팝업스토어는 657건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정규 매장의 경우 무신사, 올리브영, 입생로랑 뷰티, 맥도날드, CU 등 대형 기업들이 속속 들어섰다.
반면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한 로컬 식당 등 소규모 상점들은 핵심 거리에서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성수동카페거리의 2분기 외식업 점포 수는 2024년 241개에서 올해 228개로 감소했다. 반면 소매업 점포는 같은 기간 59개에서 71개로 증가했다.
커피·음료 업종의 경우 폐업률은 2024년 4%에서 지난해 4.3%로 상승했다. 신규 개업도 6개에서 2개로 줄었으며, 올해 2분기에는 개·폐업이 없었다. 반면 소매업 신규 개업은 2024년 7개, 지난해 11개, 올해 9개를 기록했다. 상권 관계자들은 소규모 F&B 가게들부터 상권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말한다.
성동구는 이 같은 젠트리피케이션 우려에 대응해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 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상생 협약 등을 추진했다. 임대료 안정 이행협약을 체결하고 관련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 신·증축 시 용적률 제한을 완화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협약에 따른 임대료는 성동구가 산정한 적정 임대료의 150% 이내에서 건물주와 임차인이 협의해 결정한다.
2017년에는 서울숲길 일대 318필지에 대기업·프랜차이즈 신규 입점 제한을 시행했다. 오는 12월부터는 성수동 방송대길과 연무장길 일부 지역까지 확대한다. 핵심 상권인 성수동 카페거리의 서쪽 절반가량이 해당되며, 232필지가 추가돼 총 550필지로 늘어난다.
신규 구역에서는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제과점 등 3개 업종의 대기업·프랜차이즈 신규 입점이 제한된다. 기존 서울숲길 규제에 포함됐던 화장품판매업은 이번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만 영세 프랜차이즈나 상호협력 주민협의체의 동의를 얻은 업체는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 밖에도 성동구는 지난해부터 뚝섬역 인근 산업혁신공간을 활용한 공공 팝업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소규모 브랜드에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팝업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규제와 지원책만으로는 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임대료 안정 이행협약은 자율 참여 방식인 만큼 실효성이 떨어지고, 핵심 업종이 된 패션·뷰티의 플래그십 매장과 팝업은 사실상 아무런 제한이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운영 주체와 업종 특성을 고려한 세부적인 대응과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소비 형태와 상권의 역할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성수동은 과거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은 가로수길 등과 비교해 상권의 확장 여력이 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성수동은 북쪽 중랑천, 동쪽 건대입구, 남쪽 한강변, 서쪽 서울숲 일대 등으로 상권이 확대될 여지가 남아있다. 가로수길 등 특정 거리에 집중된 상권과 달리 여러 방향으로 분산될 수 있어 임대료 상승 압력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명 브랜드의 진입은 유동 인구와 상권 규모를 키우는 동력이지만, 성수동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인디 브랜드들도 지켜야 한다는 업계와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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