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종] AI 시대의 시지프…신에서 인간 그리고 '기계와의 공존'

월요마당

 

AI 생성 이미지

 

갑자기 시지프 신화가 떠오른 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아'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시지프의 아들이라는 설 때문이다. 그리고 답은 정해져 있으니 질문만 잘하자는 AI 시대의 시지프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하다.

 

신화는 단순한 스토리 텔링이 아니다. 그 목적과 의미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한 시대 지배계급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시지프처럼 신을 속인 형벌로 바위를 영원히 밀어 올리는 신화 역시, 중세에는 신권이나 왕권 같은 세습적 계급 질서를 강화하는 수단이었고,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끊임없는 도전과 성실함, 노동과 생산성을 장려하는 메시지로 소비된다.

 

20세기 최고의 문학가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통해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인간이 "삶에 목적이나 절대적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며, 이에 대한 그의 실존적 답은 "삶에는 살아야 할 때와 증언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려 현재 AI 시대를 표현하자면 "살아내야 할 때와 증명해야 할 때"일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매출이라는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고 있으며, 이 바위는 성과와 상관없이 늘 커져만 간다. 그럼에도 매일 반복되는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 감정 노동, 그리고 쳇바퀴 같은 가사 노동까지, 이 모든 '살아냄'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또 하나의 바위는 비교, 성과, 그리고 과시이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인적자원(Human Resource)'이라는 도구로 표시된다. 도구의 목적은 유용성과 효율성에 있다. 그래서 조직의 시스템은 우리를 성장시킴과 동시에 소진시키며, 비워진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시지프가 채워진다.

 

중세에는 신이 전염병 '페스트' 앞에서 그 존재를 증명해야 했고, 현대의 인간은 기계 앞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인간이 AI라는 새로운 지적 존재, 그리고 환경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포스트 휴머니즘과 기술 자본주의로 세계관의 중심축은 바뀌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중심 세계관이 '인공 지성체와의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한발 물러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80년을 되돌아가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다시 필요한 이유는 '존재는 본질(도구)을 앞선다'는 실존주의의 담론 때문이다. 인간은 유용성으로 평가받는 도구가 아니며, 허망한 목표일지라도 시지프처럼 끝까지 완수해 내는 인간 행위의 위대함, 즉 '존재 자체'를 향한 찬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참 열심히 살았는데도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삶의 대상이 있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은 살 맛나는 일이다.

 

비가 오면 아울렛 매출부터 걱정하는 우리가,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한잔을 먼저 떠 올릴수 있다면 우리는 시간의 갑이다. 시간을 소유한 자는 남의 인생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산다.

 

어패럴 뉴스의 34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언제나 우리의 오랜 친구로 함께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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