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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헤리티지(Heritage)의 힘

발행 2023년 02월 14일

어패럴뉴스 , appnews@apparelnews.co.kr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는 패션과 트렌드가 주도하는 브랜드로 리부팅을 했지만 미적인 변신을 너무 자주 시도한 탓에 영원함(Timelessness)’의 아우라를 상실할 위험에 빠졌다. 영원함과 시의성 사이의 균형 잡기는 모든 명품 브랜드가 대면하는 경영의 딜레마다.

 

헤리티지란 우리가 유산으로 받은 전통과 기념물, 문화 전체를 아우른다. 특히 현대에서 인간 행위의 정신적 토대가 되어주는 ‘과거의 유산’을 헤리티지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유물의 보존 및 발굴, 복원과 같은 고고학적 의미 이상의 것이 담겨있다. 노래, 음식 조리법, 옷을 입는 방식, 언어, 춤과 같은 비가시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우리들에게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정체성의 단서를 던져주는 유물이다.

 

헤리티지는 원산지, 장인의식, 진정성, 유명고객, 사회사, 창립자의 역사 등 여섯 가지의 개념으로 구성되어있다. 원산지와 장인의식은 한 몸처럼 묶여서 축적된 기술과 노하우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반면 사회사와 창립자의 스토리는 특정한 시대를 살아낸 인간의 실존적 삶과 환경에 대한 서사를 통해 브랜드의 개성을 만들어낸다.

 

헤리티지란 무엇을 지키고 잊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어떤 기억을 향유하고, 후회하는가? 이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포함하는 세계이다. 브랜드의 과거를 고객들과 어떻게 나누고,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헤리티지는 문화 상호 간의 대화를 이끌어 내는 매체이자,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정서적 플랫폼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는 경쟁과 변화 속에서 브랜드의 핵심적 가치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의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을 초월한 요소를 기반으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시의성과 영원성 사이의 균형을 잡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 1월 말 구찌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뒤를 이어 디자이너 사바토 데 사르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구찌는 전임자 미켈레의 공백 이후 약 석달 여 만에 디렉터의 자리를 메우게 되었지만, 현재로선 사바토 데 사르노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사바토 데 사르노는 돌체&가바나와 프라다에서 일하며 럭셔리 브랜드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쌓았고, 2009년 발렌티노에 입사한 이후로 과거에 매몰되어 대담한 도전을 주저했던 발렌티노의 디자인을 세련된 방식으로 재해석해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데 일조했다. 중요한 건 시장의 반응이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떠난다는 소식이 투자가들에게 호재였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구찌는 톰 포드 이후로 패션성이 강한 제품에 초점을 맞춰왔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1960년대적 화려한 색감과 프린트에 기반한 디자인은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어필하며 시장을 견인, 맥시멀리즘의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케어링의 회장 프랑수아 앙리 피노는 디자이너가 주도하는 창의성과 시대를 초월한 제품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브랜드 가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차례 강조했다. 구찌의 최고 경영자인 마르코 비자리는 나아가 이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가 기존의 구찌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문화적 유산의 강화와 연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찌는 패션과 트렌드가 주도하는 브랜드로 리부팅을 했지만 미적인 변신을 너무 자주 시도한 탓에 ‘영원함(Timelessness)’의 아우라를 상실할 위험에 빠졌다. 영원함과 시의성 사이의 균형 잡기는 모든 명품 브랜드가 대면하는 경영의 딜레마다.

 

역사적 통계를 보면 헤리티지의 축을 흔들지 않고 꾸준하게 미묘한 재해석을 해왔던 브랜드가 패션 지향적인 브랜드보다 재무적인 성과가 좋았다. 올해 세계적인 패션 위크에서 발표된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실루엣의 귀환’이다. 실루엣(silhouette)은 옷의 전체적인 윤곽선이란 뜻이지만 원래는 18세기 유럽에서 검은색 그림자로 그려낸 인물의 옆얼굴을 뜻했다. 실루엣이란 그 브랜드를 성립시킨 축적된 ‘개념’들의 헤리티지이다. 이 유산을 희석시키지 않고 화재를 불러일으키며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이다.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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