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기] 남성복의 미래, 블록코어(Blokecore)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김홍기의 '패션 인문학'
작년 한 해,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침실은 사무실로 변했고 기존의 업무방식은 도전을 받고 있다. 환경파국의 위기감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를 충돌시켰고, 부자와 빈자 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홈 트레이닝 기업인 펠로튼(Peloton), 영상회의 프로그램 제조업체 줌(Zoom), 아마존 같은 기업은 유래없는 성장을 누렸지만 레스토랑과 호텔, 여행, 공연업체는 줄도산을 맞았다. 대면 방식을 고수하던 대학교육도 절망상태다. 현재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기미(幾微)란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나 상황의 되어 가는 형편’이란 뜻이다. 한자로는 미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것들, 평소에는 애써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살펴본다는 뜻이다. 직물을 짜는 베틀을 뜻하는 기(幾) 자엔 양 갈래길, 방아쇠란 뜻도 담겨있다. 변화의 기미를 읽는다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것들’을 미세한 눈으로 보고 새로운 길을 트기 위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다.
매년 기업을 상대로 트렌드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을 해온 필자지만, 코로나로 인해 각종 강연이 끊겼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코로나 시대의 기미를 읽고, 이 상황을 돌파할 단서를 찾아 고민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것은 전(Before)과 이후(After)의 차이를 측정한 것에 불과하며, 시간은 말랑말랑한 진흙 같아서, 오로지 변화에 의해서만 그 속도가 결정된다. 변화 없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도처에서 ‘코로나로 인한 암울한 시간을 이겨내자’고 구호를 외치지만, 우리가 이겨내야 할 것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는 변화를 만들고 기존 체계를 바꿔 시간과 시대를 창조할 뿐이다. 변화가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현재의 패션 시스템은 16세기 르네상스에서 18세기까지, 200여 년의 시간을 통해 빚어진 체계이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사회적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고, 연애결혼을 하고 핵가족의 형태를 정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의식주의 체계를 디자인했다. 패션은 개인주의의 산물이다. 코로나 이후, 개인주의로 점철된 사회 전반의 감수성을 변혁하는 것에서 우리의 삶을 바꿀 단서를 찾아야 한다. 공익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건강성을 복원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우리가 신체를 갖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지만 폭력의 종류는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폭력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찾아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유기체가 내릴 수 있는 최상의 의사결정이다.
인간들 중엔 자신의 몸에서 느끼는 고통만 느끼는 사람이 있고, 가족 성원의 고통만 느끼는 이가 있으며, 민족의 고통만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든 다른 종의 생명이든 모든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다.
패션산업은 그 태생부터 노동집약성을 기반으로 한다. 또 직물 소재의 획득과 가공 및 후처리 과정에서 환경을 파괴해왔다. 지속가능성과 순환경제, 친환경, 윤리적 소비 등 지난 20여 년 동안 패션의 생산 및 소비체계를 바꾸자는 주장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각각의 방법론에는 여전히 문제점이 상존한다.
필자는 올해 한국패션산업의 전면적 시스템 변화를 촉구하는 글을 자주 쓰려 한다. 값비싼 유료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신청했고, 각 국가의 탄소 절감 프로젝트를 살피기 위해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친환경 패션포럼에도 등록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패션계가 ‘소 읽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감수성’을 회복하는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일조하고 싶다. 패션은 결국 변화에 대한 철학이므로.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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