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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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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창 - 박해영기자
 
작금의 ‘기업회생절차’ 면죄부인가, 본질적 회생인가
 
수 년 간 패션업체 법정 관리인을 거친 CEO 출신이 얼마 전 판사 20여명을 대상으로 패션업에 대해 강의를 했다. 판사들이 그를 초빙한 것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는 패션 기업이 급증, 업계의 특수성을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연 초 토종 대표 신발 업체인 화승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이 들려왔다. 화승이 법원에 제출한 총 회생채무액은 약 2,300억 원, 이 중 협력사들이 받지 못한 금액만 1,300억 원에 달한다. 1세대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승승장구 하던 ‘스위브’ 전개사인 웨이브아이앤씨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기업회생절차는 한 기업이 기여하는 고용 등의 경제적 효과를 고려해 말 그대로 회생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다. 하지만 요즘 들어 보면 경영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너무 쉽게 면제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 책임이 협력사들에게 온전히 전가된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직후의 법정 관리는 시작부터 졸업까지 통상 4~5년 정도가 소요됐다면 최근에는 1년 내지 4~6개월로 더 짧아졌다. 최근 1~2년 사이 법정 관리에 들어간 패션 기업 중 80% 이상이 1년 미만의 기간에 졸업했다. 심지어 요즘은 법정관리 개시 이후 첫 달부터 100만 원이라도 변제를 시작하면 졸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관리인은 법원의 지시를 받기 때문에 판단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이토록 법정관리의 과정이 단순(?)해진 이유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회생 절차에 들어간 기업이 급증하자, 관리에 한계를 느낀 법원 측이 졸업 기간을 앞당겨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지난해에만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이 98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업계를 생각하면 물론 파산보다는 유지가 낫다. 하지만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기간이 3개월인데, 졸업까지 4~6개월이 걸린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최근 한 속옷 업체가 법정 관리 졸업 1년도 못돼 파산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기업회생절차에는 엄중함이 없어 보인다. 수백억 원대 기업이 도산할 경우 보통 4~5개의 납품업체가, 수천억 원대 기업의 경우는 최소 10여개 하청 업체가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방만한 기업 운영에 대한 대가를 협력사들이 치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회생절차는 경영 실패의 책임에 대한 무게감을 느끼기에 너무나 간소하다. 회생을 위한 체질과 경영 환경을 갖추고 부채를 갚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치곤 너무 짧다. 경영자가 마땅히 가져야할 책임의식과 법 제도의 엄중함을 일깨워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현재 기업회생 신청은 대부분 대상 업체가 스스로 한다. 일부 몰지각한 경영자들이 기업의 부실을 털어내는데 악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러한 악용을 막으려면 진행 과정과 마무리에 있어 훨씬 더 치밀해져야 한다.

과거 법정관리인은 3자 관리인(법원 지정 대표)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실패의 당사자인 기존 경영자를 그대로 두는 경우가 많다. 10여 년 전 부터 기존 경영자를 존중하는 미국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의문이 드는 지점이다. 미국식이면 선진국형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우리 법원의 수준이라고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실패한 경영자의 빚을 법원이 나서서 털어주고, 쉽사리 경영권 유지도 가능하게 해주는 게 그 기능이라면 지금의 기업회생절차는 내용은 사라진 채 형식만 남은 ‘죽은 제도’일 것이다.    

애초에 이 제도를 마련할 당시의 ‘본질’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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