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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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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유통의
끝나지 않은 ‘사대주의’



“국내 편집숍들은 아직도 한국 디자이너 제품을 취급하지 않아요. 그런데 해외에서 뜨면 비행기를 타고 가서 바잉을 해 옵니다. 디자이너들이 해외 진출에 기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그래야 국내 사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나름 성공했다 평가받는 젊은 디자이너는 이러한 현실을 ‘사대주의’라 표현해도 좋을지 기자에게 반문했다. 핸드폰으로 밀라노, 파리, 뉴욕의 물건을 사 쓰는 시대에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준지’로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정욱준 디자이너는 수년 전 파리 진출 배경을 묻는 기자에게 “국내에서 팔아주는 곳이 없어서”라고 했다. 홀로서기를 해 보려고 홈쇼핑 브랜드를 만들기도 했던 그는 해외로 방향을 튼 후에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정구호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은 “국내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인 쇼룸이 크게 늘고 있다. 그들은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중국 뿐 만이 아니다. 온라인을 통해 유럽과 중동 리테일러들이 바잉 요청을 해 오고 유명 백화점이 신진들의 상품을 바잉한 매장을 내는 요즘이다.
‘한국적 오리진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거나 ‘한국 스트리트 패션의 재발견’이라는 호평도 쏟아진다. 한 디자이너는 영국 리테일러들로부터 ‘최고의 테일러링’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본지가 해외 바이어들에게 관심 있는 국내 디자이너나 브랜드를 묻자, 무수히 많은 이름들이 거론됐지만, 국내 유통에서 볼 수 있는 이름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몸집을 불릴 대로 불린 국내 유통사들은 좀처럼 이들을 제대로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유연하다는 편집숍 등의 리테일도 ‘한국산’을 무시한다.
최근 만난 한 대형 유통사 관계자의 얘기는 이러한 시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과거 1세대 디자이너들의 ‘사업성 결여’를 떠올리며 디자이너를 팝업 매장이나 플리마켓의 대상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소비자들이 수입산에 열광하는 시절도 아닌 지금, ‘무지’라는 표현 이외에 다른 표현을 찾을 길이 없다고 하면 너무 편협한 판단일까. 수수료 위탁제의 국내 유통 구조를 탓하는 일은 이제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제조와 유통의 역할이 분리되지 않는 구조의 한계가 디자이너들에게 가혹한 환경임은 분명하다. 유통 자체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인정해야 할 시점이다.
물론 반대급부도 존재한다. 해외 경험을 해 본 이들은 창의력만을 무기로 할 수 있는 유럽이나 미주에서는 너무 쉽게 브랜드를 런칭하고 또한 포기해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경쟁이 시장의 발전을 이끌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동맥경화 같은 상태에 빠진 국내 유통이 해외에 우리 콘텐츠의 우선권을 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 내부의 자원을 알아보지도,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사대주의’라는 말은 제법 정확한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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